2012년 7월 4일 수요일

[책] 그 남자네 집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저


어느 공간에 가면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장소가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의 시작도 그러하다.
나이를 먹은 주인공이 후배의 집 구경을 갔다가 50년 전 첫사랑인 그 남자가 살았던 기와집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소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났지만 여전히 건재하게 남아 있는 기와집은 그 남자에 대한 기억으로 주인공을 이끌어간다. 50년 전 어머니의 외가쪽 친척인 그 남자네가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기와집으로 이사를 오고, 겨울 저녁 퇴근하는 전차에서 우연히 마주쳐 서로 집안의 안부를 물으면서 그 남자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그들은 1950년대 폐허의 서울 거리를 누비며 구슬처럼 빛나는 겨울을 보내지만 여러 가지 현실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주인공은 은행원인 민호와의 결혼을 결심하며 그 남자에게 이별을 선언하는데….

미시적 리얼리즘의 농밀한 압축과 일상과 일탈에 대한 팽팽한 대비, 특유의 입심으로 풀어낸 감칠맛 나는 이야기를 통해 순수한 첫사랑에 대한 지나간 기억을 되살려 주는 소설이다.


< 본문 중에서 >

*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 치며 빛났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다림의 시간은 황홀했다. 무엇을 입고 나갈까, 첫사랑이 긴 치마를 허리띠로 동여매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면 얼마나 실망할까. 나 또한 그 남자가 첫사랑이거늘. 그건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저것 좋은 나들이옷을 꺼내입고 거울 앞에서 나를 비춰보았다. 어떤 옷은 점잖아 보이고, 어떤 옷은 촌스러워 보이고, 간혹 요염해 보이는 옷도 잇었다.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구슬같은 처녀이고 싶었다.

*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둑거렸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올해 들어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릴만한 소재들이 많이 나타났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그랬고, 봄에 한참 많이 들었던 버스커버스커의 노래가 그랬고,
'그 남자네 집' 이 책 또한 첫사랑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 남자네 집'은 첫사랑에 대한 감정들이 표현된 소설이다.
그리워 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추억속에만 묻어 두고 싶기도 하고 그냥 떠나보내고 싶은 감정들이 나타나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첫사랑은 첫사랑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남는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것 같다.